뉴스

묵개 선생의 파주이야기 <4> 심학산과 구봉 송익필(2)

입력 : 2018-03-01 15:35:00
수정 : 0000-00-00 00:00:00

묵개 선생의 파주이야기 <4>

심학산과 구봉 송익필(2)





율곡을 따랐던 정여립 

사실은 임진왜란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심각할 정도의 당쟁이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쟁이 상당히 격화되고 사람이 죽는 일 벌어지기 전까지는 조용하였으나 이 중에 정여립 사건이 발생합니다. 정여립은 인물은 오늘날의 전주 출신입니다. 체격도 인물도 좋고 학문적 재능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매우 호탕하였습니다. 무인들과도 가깝고 본인도 무예를 익혔습니다. 그는 원래 이이를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율곡을 등지고 동인들과 가까이 지내다가 쫓겨나면서 전주로 가서 대동계라는 모임을 결성을 합니다. 실제로 대동계의 구성원들은 왜구가 침략했을 때 전투에 참여해서 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전주 무악산 부근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송익필이 사건을 조작했나?

이 정여립이 반란을 도모했다라는 고발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정여립이 반란을 도모했다면 그가 살고 있는 전주에서 고발되어야 하는데 황해도 해주에서 정여립을 밀고했다합니다. 이때 정여립은 체포를 피해 도망가다가 아들과 함께 죽습니다. 이 정여립 사건은 동인을 공격하기 위해서 누군가 조작했다는 의심을 많이 받습니다. 그 사건조작의 배후에 구봉 송익필이 있었다는 거죠. 권력을 잡기위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매우 잘 짜여진 각본이었던 것이죠. 이 사건으로 인하여 동인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정철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며...

정여립의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는 바로 서인의 맹장이었던 정철이었죠. 바로 정철의 권력굳히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동인의 기대주는 이발이었습니다. 이발은 동인세력이 정계로 진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죠. 이 이발이 정여립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것이 심문과정에서 드러나고, 잔혹하게 고문을 받아 목숨을 잃습니다. 이후 사실상 서인이 집권을 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기 전까지 사실상 정국을 서인이 주도를 하면서, 서인의 배후에 당쟁에서 승리를 하는 여러 가지 묘수를 짜낸 사람이 구봉 송익필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이순신도 송익필을 찾아 공부

여담입니다만 구봉 송익필이 소년시절에 이순신이 배를 타고 한강을 내려왔다가 송익필을 찾아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올라갈 때는 배를 타고 온 이순신이 육로를 통해 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순신이 구본 송익필의 제자였다는 것이지요. 이런 인연으로 구본이 이순신의 뛰어난 능력을 예측하고 친구였던 이율곡에게 이순신을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합니다. 이율곡과 이순신은 혈연적으로도 매우 가까웠습니다.  

또 하나는 여담으로는 송익필이 선조를 만난 일입니다. 선조는 송익필이 눈을 자꾸 감으니 “왜 그러느냐?”고 물었는데, 송익필이 “눈을 뜨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선조가 억지로 눈을 뜨게 했더니 눈에서 광채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조가 송익필을 멀리했다하지요.


서인의 지휘자 정철의 시조 

심학에서 시작된 어떤 움직임이 병자호란까지 연결되는 이야기에 들기 앞서, 서인의 사실상  진두지휘자인 정철의 시조를 한 수 감상해 보겠습니다. 

정철의 시 중에 적성쪽으로 가다 보면 파평면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 쪽 길에 걸려 있는 시입니다.

           

재 너머 성권롱집에 술 익었다는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일러라


성혼의 집에 술을 담았는데 이제 막 다익었다는 전갈을 듣고 정철이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시입니다. 그 당시 우계성혼이 살던 곳은 파평산 아래 쪽에 있는 눌노리였는데, 감악산의 줄기가 이어져 눌노리 앞에 불현 듯 멈춰선 모습이 깨진 것 같아서 파산이라 불렀고 동네사람들은 뱀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에 파산서원이 있습니다. 우계 성혼은 자기수양에 전념했습니다. 

정철과 성혼의 관계는 매우 가까워 보이고, 정철은 율곡 이이하고도 가까웠던 것 같으나 성격상으론 밀접한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철과 죽이 맞았던 이는 심학산자락에 있던 구봉 송익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묵개 서상욱

(역사칼럼리스트, 관인학사 강두)

#83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